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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1. 21世 〉30. <부정공>귀정공휘병두묘갈명(龜亭公諱秉斗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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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부정공>귀은공휘병문행록(龜隱公諱秉文行錄)
龜隱公諱秉文行錄 公諱秉文字聖章龜隱其號也述菴公諱善浩之子龜亭公諱秉斗之弟也公生于 哲宗甲寅七月四日幼而敏悟絶人甚得父母之愛六歲失恃號痛如不欲生事繼母極盡誠孝才上學不煩程讀而勤於課讀時而有驚人句語長者奇愛之年十四遭外艱哭泣之哀送終之節情文備至人以善居喪稱祖母之喪伯兄承重公同處廬次不以朞服自寬居家惟孝友闔門雍睦人無間言事叔如事父友群從如同氣以至鄕黨宗族極其誠歡伯氏偶嬰奇疾經歲沉綿公極竭誠治療靡不用極庚寅五月丙尤劇迎醫於百里之外夜深而還伯氏執手而言曰我將不起老母在堂幼穉滿室後事惟君兄弟是恃言訖而終公痛深割半大少家務叢集一身仰事俯育殫盡心力以至奉祭祀恤宗族接賓客一如先兄在世重義輕財見人急難謀忠竭力必圖極救甲午東匪之擾鄕人賴全生命者多歲甲辰又哭弟喪恐切終鮮於是凡繫家事一聽於字姪己酉遭繼母喪年己不毀而執禮不懈以闡揚先美爲己任竹村龜川兩公之配食肅慕殿奉事公之銘跡義碑永慕齋之講規曾祖祖禰之狀碣碑誌盡心經紀此可見繼述之孝矣甲子秋偶患寒疾將至屬纊戒以勿墜先訓一不及家事翛然而逝即九月一日也壽七十一葬雲峴甲坐原齊晋州河氏敏秀女縣監百源曾孫女婦德咸備配君子以禮敎子女以法歿于丁巳閏二月二十日葬大光洞國師峰左麓亥坐有四男葬洪燮次桂燮次孝燮次穩燮元瀯圭鄭鍾烈女所適也孫休益女曺鳳鎬長房出休培三房出餘皆幼穉公性行淑潔儀容端雅不問可知爲法家子所交遊多當世賢德如奇松沙宇萬鄭碧捷雲五崔雲齋永祚乃其情契沙公以博考通今稱之亦可見木之山矣晩年見世道衰還發尙寐之嘆每飮酒數杯慷慨泣下若有千古不平之懷其素所蓄牘可知矣嗣子 草其事行求傳狀文甚勤辭以不能文不獲略述平日之巢聞見之大春以爲立言君子採擇焉 柔兆攝提格仲秋日 錦城 吳駿善 謹狀 귀은공휘병문행록(龜隱公諱秉文行錄) 공의 휘는 병문이요 자는 성장(聖章)이며 귀은은 그호고 술암공(述菴公) 휘 선호(善浩)의 아들이요, 귀정공(龜亭公) 휘 병두(秉斗)의 아우였다. 공은 철종(哲宗) 갑인(甲寅一八五四)년 七월 四일에 출생하였는데, 어려서 영리하여 심히 부모의 사랑을 받더니 六세에 모친을 잃고 슬피 부르짖어 살고저 아니할 것 같이 하였고, 계모를 섬기며 극히 성효를 다하며, 겨우 입학하여 공부하라고 심히 독촉 아니 하여도 스스로 부지런히 공부하고 때로 사람을 놀랠 글귀와 말을 하니 어른들이 기특하다고 많이 사랑하였다. 十四세에 외간을 만나 슬피 울고 보내는 절차에 정과 예를 갖추니 사람들이 착하게 거상한다 일컬었고, 할머님 초상에 백형이 승중 하였는데 공이 여막에 함께 거처하며 기년복으로서 스스로 소홀이 아니하고 집안이 오직 효도와 우애로서 하니 가문이 화목하고 사람사이에 다른 말이 없었다. 숙부 섬기기를 부모님 섬기듯하고 여러 종형제들을 동기간 같이 대우하며 고을 종족에게까지 그 지성과 공경을 다하였다. 백씨가 우연히 이상한 병을 얻어 해가 지나도록 신고(辛苦)하니 공이 정성을 다하여 치료하였다. 경인(庚寅)년 五월에 병이 더욱 위독하니 백리밖에 의원을 맞아하여 밤이 깊어서 돌아오니 백씨가 손을 잡고 말하되, 『내가 장차 일어나지 못하면 노모가 집에 계시고 어린 것들이 방에 가득하니 뒷일은 오직 그대만 믿노라.』 말을 마치고 별세하니, 반신을 찢는 슬픔이 지극하나 대소 가사가 한몸에 달린지라 우러러 섬기고 굽어 기르기를 마음과 힘을 다하고 제사를 받들며 종족을 구휼하고 손님을 접대한 것을 선형 생시 같이 하며, 의리를 중히 하고 재물을 가볍게 알아 사람의 급난을 보면 힘을 다하여 구제하였다. 갑오(甲午)년 동학란에 고을 사람이 힘입어 생명을 온전히 한 사람이 많았다. 갑진(甲辰)년에 또 아우 상을 만나 간절히 종선(終鲜)을 근심하고 이에 무릇 가사를 자질에게 맡기었다. 기유(己酉)년에 계모상을 만나, 연세가 많아도 게으른 빛이 없이 집례하고 선조의 아름다운 덕을 현양함으로써 책임하고 죽촌(竹村)·귀천(龜川)의 숙모전 배식과 봉사공의 의적비명이며 영모재의 강독한 규약과 증조 조 니의 장, 갈, 비, 지를 마음을 다하여 경기하였으니 이로써 가히 이어 기술한 효도를 보겠도다. 갑자(甲子)년 가을에 우연히 한질을 않아 장차 운명할 때에 선조의 훈계를 떨어뜨리지 말라 경계하며 가사는 말하지 않고 홀연히 돌아가니 곧 九월 一일이요, 춘추는 七十一세였다. 운현영 갑좌원에 안장하고, 부인은 진주하씨(晋州河氏) 민수(敏秀)의 따님으로 현감 백원(百源)의 종손녀인데 부덕이 다 갖추어져 군자를 예로서 짝하고 자녀를 법도있게 가르치다가 정사(丁巳)년 윤二월 二十일에 별세하니, 묘소는 대광동 국사봉 좌록 해좌(大光洞 國師峰 左麓亥坐)이다. 아들은 홍섭(洪燮)·계섭(桂燮)·효섭(孝燮)·온섭(穩燮)이요, 딸은 원영규(元瀯圭)·정종렬(鄭鍾烈)의 부인이며, 손자 규익(圭益)·조봉호(曺鳳鎬)처는 큰아들 소생이요, 휴배(休培)는 세째아들 소생이며 나머지는 다 어리다. 공이 성행이 맑고 조촐하며 의용이 단정하고 맑아 묻지 않아도 가히 법가 자제라 알겠도다. 사귀고 노는 자 대개 당세의 유덕군자인데 기송사(奇松沙) 우만(宇萬)·정벽서(鄭碧捿) 운오(雲五)·최운재(崔雲齋) 영조(永祚) 같은 이가 그의 어진 벗이었다. 송사공이 옛일에 밝고 이제를 통달하였다 칭도 하였으니 또 가히 박식함을 보겠도다. 말년에 세도(世道)가 쇠미함을 보고 일찍 자고 싶다 탄식하고 매양 여러잔 술을 마시며 울분하여 눈물을 흘리니 만일 천고에 불평한 생각이 있으면 그 본시 쌓은 바를 가히 알겠도다. 사자가 그 사행을 초하여 장문을 간곡히 청함으로, 글이 졸하다 사절치 못하고 대략 평일 견문한 중요한 것을 기록하여 입언군자의 채택을 바람. 금성(錦城) 오준선(吳駿善)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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